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취 미/괴물과 싸워 이기는 방법

시작

by 지인의세계 2020. 10. 4.

어둠이 캄캄하게 덮이고 

잠을 자야 할 시간이 되면 찾아온다.


긴장. 불안. 두려움. 우울. 슬픔. 그리움. 


아마도 해결되지 못한 감정의 뭉텅이들.


어쩌면 단순한 호르몬의 장난.


안절부절 못하게 되고 아랫배의 피부가 가려워 온다.

피부 겉은 서늘하고 안은 숨막힐 듯 답답하다.


일어나서 불을 키고

시원한 물을 몸에 발라 잠깐의 시원함을 맛본다.


그리고 나면 다시 찾아오는 참을 수 없는 감정의 뭉텅이들.


지금 이 순간을 모면할 수 있다면 뭐든 괜찮다고 느낀다.

뭐라도 필요하다.


다른 감각에 초점을 돌리고 싶다.


속을 채우고 싶다.


나른해지고 싶다.


쉬고 싶다..



냉장고를 연다.

시원하고 달콤한, 어떨 땐 따듯하고 고소한 무언가를 찾는다.


나를 구원해 줄 무언가를 찾는다.


혹독한 현실에서 뒹굴다 상처난 몸과 마음을 달래줄 

무언가가 필요하다.

몹시 필요하다.


뭐라도 손에 쥐고 침대로 돌아간다.


처음 누웠을 때와는 다르게 많이 흐트러진 자리.


이미 돌이킬 수 없이 모든 게 망가진 느낌..

익숙한 느낌..


다시 반복되고 있는 걸 알지만

몇 번 째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걸 알지만

그럼에도 선택지가 없는 느낌.


이미 머리 속엔 안개가 낀 듯 이성은 마비되었고

알 수 없는 뒤엉킨 감정들만 웅성이고 있다.


계속 입으로 입으로 들어간다.

허기진 마음으로 계속 밀어넣는다.

목구멍이 막힐수록 안정감을 되찾는 것만 같다.


충분히 죄책감이 들고 손가락이 붓기로 부풀어오를 즈음에야

다시 정신이 든다.


또.


또 졌다.


나는 늘 졌다.


이게 뭔지 모르겠지만,

밤마다 잡아먹혔다.


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면 마음 한 귀퉁이도 잡아먹힌 듯

불쾌하고, 불행하고, 끔찍했다.

희망을 잃어버린 듯

미래를 잃어버린 듯

모든 게 부정적이고 무채색으로 뒤덮였다.


결국 날이 밝아도 깜깜한 밤에 갇힌 것 같이

불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낸다.


그리고 다음 날 또 같은 밤, 새벽.

먹고 먹히고.


같은 날이 며칠 반복되고 나면 절로 힘이 빠지고

삶의 모든 통제력을 잃은 듯 무기력이 찾아온다.


모든 걸 그만두고


그만 쉬고만 싶다.


휴식이 필요하다.


지금껏 마음이 내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

몸이 내는 소리였다.


위장이 그만 쉬고 싶다고

온 몸이 그만 쉬고 싶다고 말한다.


긴 휴식이 필요하니

다른 건 다 포기하고 

새로운 시작은 다 미루라고 말한다.


결국 삶을, 남은 시간들을 다 먹히게 되버린다.


그러지 않고 싶어서 발버둥친다.

늘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왔다가 다시 빨려들어간다.


늘 같은 괴물에게 먹혀 지치고

지치고


늘 지고

또 지고


실패의 죄책감도 나의 몫이지.


지긋지긋하다 정말.


이젠 이기고 싶다.


무슨 짓을 해서든,

내 일상을 망쳐서라도


성실하고 바른 나를 다 망쳐서라도


나만 잘난 듯 거리를 걸어보고 싶다.

사람들 틈에 나만 느끼며 있어보고 싶다.


그만 비교하고 상처받고 싶다.


그냥 나이고 싶다.


그러기 위해선 이겨야 한다.


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.


끝내 승리할 때까지

내가 나를 컨트롤하고 온전히 이완할 수 있을 때까지

행복할 때까지


싸워야 한다.


이겨야 한다.



나는 언제나 나를 구원한다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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